[기고]나의 일상을 지배하는 건 '지방권력'

무분별한 고층 아파트 난립으로 주문진 경관 망친다

김남권 | 기사입력 2018/01/07 [22:46]

[기고]나의 일상을 지배하는 건 '지방권력'

무분별한 고층 아파트 난립으로 주문진 경관 망친다

김남권 | 입력 : 2018/01/07 [22:46]

이 글은 주문진에 거주하고 있는 한 주민이 기고한 글입니다. 

 

 

▲ 2차선 도로변에 들어선 15층 호텔의 진입로 맞은편으로 시내버스가 지나치고 있다.     ©

 

최근 몇 년 사이 속초를 비롯해서 강릉까지 강원 영동지역의 부동산 시장이 전에 없던 건축 붐으로 들끓고 있다. 부동산 시장에 문외한인 나 같은 사람조차도 갑자기 해안가 언덕이 깎이며 거대한 아파트가 들어서고, 오래된 집들이 부서지고 반듯한 건물터가 생기는 등, 전에 없던 건축 경기를 일상에서 피부로 느낄 정도다.

 

왜 내가 사는 인구 2만도 안 되는 이 조그만 어촌 마을인 주문진읍까지 동시다발적으로 초고층 아파트나 호텔이 마구 들어서는 걸까? 전국적인 농어촌 인구 감소 현상은 주문진읍도 예외가 아니어서 인구는 꾸준히 감소하고 있고, 거기에 더해 오징어 어획량 감소를 비롯해서 흉어기가 지속되고 있는 지역경제 사정이나 주민들 평균소득을 생각해 보면, 특정 시점에 신규 아파트들이 마구잡이로 들어서는 현재의 상황은 지역 주민들의 주택 실수요와는 거리가 멀 것이다.

 

▲ 강릉 주문진 해안가 언덕을 깎고 들어선 ‘별장형 아파트’의 홍보용 조감도[출처 홈페이지]     ©

 


신규 아파트 급증 현상의 뒷면에는 평창 겨울올림픽 개최와 그에 따른 초고속 열차 신설로  교통편이 좋아져 외부인들이 이곳을 더 쉽게 찾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과연 이를 통해 이곳에 정착하려는 인구 유입이 얼마나 될까?


서울을 중심에 두면 강릉 영동권은 사실상 변방과 다를 바 없고 지역 경제 역시 활발하지 않은 이곳에 평생 정착할 목적으로 들어올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 위 조감도의 ‘별장형 아파트’가 실제 마을 인근에 들어선 모습. 이전까지 바닷가 언덕위에서 모두가 공유할 수 있었던 수평선 일부가 ‘사라져’ 버렸다.     © 기고자 사진제공

 

 

신규 아파트 분양분 중 대부분은 교통 편의에 따른 접근성과 동해안 자연 경관의 상품성을 약삭빠르게 노린 건설업체들의 공급과, 여윳돈을 가진 외부인들의 휴가철 별장용 아파트나 자산용 보유, 또는 부동산 투기 등의 비주거용 수요가 맞물려서 채워진 매물일 것이다.


지역에 실제 거주하는 주민들 입장에서는 주민들의 주거권 향상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이런 고가 아파트들의 급증이 반가울리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중 초고층 아파트들의 증가 현상은 주민들의 일상생활에까지 불편을 끼칠 수 있어 앞으로 적지 않은 문제가 예상된다.

 

대도시 상업지구와 달리 지방에서는 15층 이상의 건물만 들어서도 인근 주민들의 가슴은 먹먹해진다. 일단, 초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면 주변 건물이나 주택지에 그늘이 져 일조권을 침해당하는 것은 물론, 자연 경관이 아름다운 지역의 경우 지역 주민은 물론 여행객들 모두의 공유자원인 자연 경관조차 초고층 아파트 입주자들이 독점하게 돼 조망권이 침해된다.

 

특히 지방의 경우 도시 전체적으로 건물 높이가 낮아 특정 건물들이 이쑤시개처럼 마구 들어서게 되면 도시 전체적인 조망도 해치게 돼 도시계획적 고려가 더 중요시돼야 할 텐데, 현실은 정반대로 흘러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주문진에 들어서고 있는 20층 규모의 아파트 홍보 사진.[출처 업체홈페이지]     ©

 


여기에 더해 초고층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맞닥뜨리게 될 교통문제나 화재 문제를 생각하면 지방 소도시의 초고층 건물 증가 현상은 지역 주민들의 일상에까지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주문진읍의 경우 적지 않은 주민들이 대중교통인 시내버스를 이용하는데, 시내버스는 2차선으로 된 옛 중앙도로를 단일 노선으로 운행되고 있다. 읍의 전체적인 상가 건물도 이 2차선 도로를 중심으로 뱀처럼 길게 형성되어 있는데, 현재 시내 중심부에 위치하면서 이 2차선 도로 의 바로 옆 인도를 접하여 지하 2층·지상 15층(총 340실) 규모의 큰 호텔이 들어서 마무리 공사 중에 있다. 여기에 더해 이 건물 100미터 반경에 33층 초고층 아파트 2동(총 330세대)도 들어설 예정이다.

 

▲ 고층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주문진의 전체적인 조망이 급변하고 있다. 주거지 인근에 콘크리트 장막으로 들어선 20층 고층 아파트로 인해 동네 비탈길에 오르면 누구나 볼 수 있었던 대관령 산자락이 ‘사라져’ 버렸다.     ©

 


많은 주민들이 근처 강릉으로 출퇴근이나 통학, 병원 진료 등을 위해 대중교통인 버스를 이용하고 있는데, 이 2차선을 단일 노선으로 운행되고 있는 시내버스는 호텔의 자가용 진입로를 지나쳐야 한다. 여름·겨울의 휴가철 등 성수기에 이 호텔을 이용하는 자가용 고객들이 수시로 진입로를 들락날락거리면, 다수 주민들의 이동 수단인 시내버스 운행은 상당한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을 것이고, 인근에 들어설 33층 규모의 초고층 아파트 입주민들의 교통량까지 고려하면 교통 혼잡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문제다.

 

초고층 아파트의 화재 위험은 또 어떨까? 제천 화재 사고를 경험하면서 우리 사회는 화재 위험에 대한 경각심을 더욱 높이고 있는데, 영국 그렌펠타워 화재에서 보듯이 화재 위험에 대한 우려가 높은 곳 중 한 곳이 바로 초고층 아파트들이다. 보통 인명 구조가 주목적인 고가사다리차가 진입 가능한 높이가 15~18층인 점을 고려하면, 초고층 아파트의 경우 15층 이상 높이에서 화재가 발생할 경우 건물 내부에 설치된 자체 소방 시설 외에는 딱히 화재 진압 방법이 없다.

 

▲ 2차선 도로변에 들어선 15층 호텔의 진입로 맞은편으로 시내버스가 지나치고 있다.     ©

 

특히, 영동 지역의 경우 지형적 특성으로 바람이 많아서 소방 헬기의 지원이 여의치 않은 경우가 발생할 가능성도 높은데, 2~3년 전까지만 해도 보지 못했던 15층 이상의 초고층 아파트들이 인구 2만도 안 되는 이 조그만 어촌마을에 마구 들어서는 게 과연 반길만한 일일까?
      
2011년 4월에 있은 강원도지사 보궐 선거 TV유세에서 후보로 나온 최문순 도지사는 수십 년 동안 지방 보수 정권의 아성이었던 강원 도민들의 열악한 복지 현실을 특별히 주문진읍 산동네 어민들의 생계 문제를 꺼내들며 언급했는데, 참담해하던 당시 표정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6년여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분들의 삶이 얼마나 개선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 주문진읍은 주민들의 삶의 문제가 생계 문제를 넘어 주변 주거환경이나 자연환경까지 위협을 받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최문순 도지사와 강원도의회가, 태초에 지구가 만들어져 수십억 년을 유지해 온 동해안의 아름다운 자연 환경과 경관이 탐욕스러운 토건자본과 한심한 지방행정권력의 독단에 의해 1~2년 사이에 초고층 아파트들에 의해 마구잡이로 훼손되는 것을 막을 방법에 대해 고민할 수단은 없을까?  

 

주문진읍에 초고층 건물들이 들어서는 데 직접적인 인·허가권을 가지고 있는 최명희 강릉시장은 정말 주문진 지역주민들의 출퇴근이나 학생들의 통학, 노인들의 인근 병원 방문 등에 불편이 생기지는 않을지 2차선 도로변에 들어서는 호텔 건축에 대해 현장에 와서 단 한 번이라도 직접 확인하고 건축 허가를 내준 걸까? 강릉시장의 행정을 견제할 강릉시의회는 또 어떤가?

 

▲ 주문진 최고층 건물이 될 33층 규모의 초고층 아파트 투시도. 곧 착공 예정이다     ©

 

 

우리는 우리 사회 대부분의 문제가 청와대 및 각 중앙부처, 국회, 사법부나 메이저 언론기관 등 중앙권력기구에 집중돼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정작 내가 사는 곳에서, 내 주변 환경을 그늘지게 만들고 내 시야에서 아름다운 경관을 빼앗으며, 내 출근 및 통학 시간을 늦추게 만드는 초고층 건물이 들어서거나, 내 눈과 목에 염증을 일으키거나 내 고막에 소음을 일으키는 공장이 들어서는 등 내 일상의 적지 않은 부분을 지배하는 권력이 지방권력이라는 사실은 모르고 산다.

 

지역 주민들의 민생과 삶의 질, 복지와 인권 개선 등, 민의를 대변하기 위해 시장이라고 뽑아놨는데, 당선되고 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로 토건업자들과 한편을 먹어 또 한 명의 ‘사장’이 돼 버리는 ‘우리 동네 박근혜’같은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전국적으로 한 둘이 아닐 것이다.

 

지방행정권력을 견제하라고 뽑은 지방의회도 주민들의 요구에 얼마나 민감한가 생각해 보면 역시 실망스러운 부분이 한 둘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막상 자신의 일상에서 이들의 횡포와 권력남용, 무능과 맞닥뜨린 후에야 왜 그들을 뽑았는지, 진작 그들을 견제할 지역 시민단체라도 지지해 볼 생각을 못했는지 후회하게 된다. 초고층 아파트가 내 일상에 들어와 나와 내 이웃들의 삶의 문제가 된 내 경우처럼 말이다.

 

정작 주문진에 사는 사람들은 나와 내 지역 주민들인데, 나와 지역 주민들이 사는 주변 환경이 우리들의 의사가 전혀 고려되지 않는 방식으로, 우리들은 마치 이방인이 돼 버리고 오히려 돈과 권력을 지닌 일부 세력이 주인이 되어 아무렇지 않게 결정을 내리는 현실이 납득할 수 없어, 시민단체(경실련) 도시계획 담당자에게 지역 건축물 인허가권이 시장에게 있는 게 맞는지, 건물 높이 제한 등 견제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그리고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인허가권이 있는 것이 맞고 높이 제한 등 토건업자들이나 지방권력을 견제하는 방법은 조례 제정이 거의 유일하다는 당연한 답변을 듣고서 문득, 내 일상을 지배하는 실질적인 권력은 지방권력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이번 일로 내년 지방선거를 결코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경각심을 더욱 분명하게 갖게 되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후회하지 말고, 지방선거를 마치 졸업 후 진로 결정이나 학과 선택, 직장이나 배우자 선택처럼 나와 내 이웃의 일상에 큰 변화를 미치는 중대한 일로 받아들이길 바라는 마음에 몇 자 적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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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권력 18/01/10 [18:11] 수정 삭제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잘봤습니다
공감 18/01/08 [17:11] 수정 삭제  
  지방에서 허가를 내 줄때 주변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고 봅니다. 글쓰신 분의 의견이 공감합니다.
근데 18/01/08 [10:55] 수정 삭제  
  그렇다고 비싼 땅값에 전부 낮은 건물만 지으라면 누가 투자 할까요
바람 18/01/08 [08:45] 수정 삭제  
  주문진이 바다가이다보니 경치땜에 고층건물들이 많이 들어서는거 같네요
덕분에 이런문제가 있다는걸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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