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운아 황운하 제1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서형 작가 | 기사입력 2018/04/10 [23:11]

풍운아 황운하 제1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서형 작가 | 입력 : 2018/04/10 [23:11]

 



 

법을 아주 우습게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법 위에 있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입니다.


배우 박중훈이 주연을 맡은 OCN 방영드라마 <나쁜녀석들-악의도시>가 있습니다. 이 드라마는 이 사회 법 위에 있는 사람들의 적나라한 악행들을 펼쳐 보입니다.

 

처음에는 돈 많은 기업인인가 싶더니 권력과 부에 미친 검찰 지검장 악행이 드러나지요. 이들이 구속되자 착한 권력으로 보이는 새 지검장이 들어섭니다. 그 다음 ‘나쁜 녀석들’로 강력계 형사들이 급부상하지만 이 역시 검찰 조직이 뒤를 봐줬다는 게 드러납니다. 결국 착한 권력으로 생각했던 새로운 지검장도 ‘조직 보호’ 논리 앞에서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국정원과 검찰 권력 견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습니다. 적폐청산이라는 명분으로 검찰 조직도 인사 물갈이가 이뤄졌습니다.


<나쁜 녀석들>은 검사장 한 명 바뀐다고 해서 썩을 대로 썩은 검찰 조직 개혁이 쉽게 이뤄지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한 가지 간단한 방법이 있다고 합니다. 경찰이 수사권을 가지면 된다고 합니다.

 

경찰 수뇌부가 보기에 통제가 안 되는 아주 ‘나쁜 녀석’이 이런 주장을 오랫동안 했습니다. 바로 경찰 황운하입니다. 상대가 악이라고 생각하면, 발언 수위가 자기 상사든 대통령이든 거침이 없습니다. 저자는 오랫동안 경찰 수사권 독립 역사와 궤를 같이 한 이 인물을 눈여겨보고 취재했습니다.


이 연재는 경찰로서 황운하 인생을 통해 검경 수사권 조정에 담긴 사회적 의미를 되짚어보고자 합니다.

 

제1화. 인정사정볼것없다.
제2화. 내자존심이어때서
제3화. 서부지검이상없다
제4화. 외시출신경찰청장
제5화. 북창동의언터처블
제6화. 오늘참멋진날이야
제7화. 백한번째프로포즈

 



 

제1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2012년 말 경찰과 검찰이 첨예하게 맞붙은 사건이 있었다. 이를 두고 한 기자는 유사 이래 경찰이 검찰에게 날린 최고 ‘빅엿’이라는 표현을 썼다. 바로 ‘김광준 검사’ 사건이다.
 
수조 원 단위 다단계 사기범 조희팔이 숨긴 자금을 추적하던 경찰은 자금 일부가 검찰 특수부 출신 검사 김광준이 만든 차명계좌로 흘러간 단서를 포착했다. 경찰은 디데이를 정하고 김광준 차명계좌 관련자를 전원 조사하고자 전국으로 흩어졌다. 이 가운데 차명계좌 주소지 조사를 위해 한 지역에 모인 경찰들은 주변 장소가 무척 낯익다는 생각을 한다.
 
“여기 어디서 봤던 데 아냐?”

 

그곳은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년) 촬영 장소였다. 영화는 1996년 인천서부경찰서 형사들 활약을 소재로 했다 1980~1990년대 수사는 잠복과 탐문에 의존했다. CCTV나 블랙박스 도움은 받을 수 없었다. 여죄를 밝히는 과정에서 영화처럼 용의자를 폭행하기도 했다. 주연 배우 박중훈은 당시 인천서부경찰서 형사 박재인이 하는 말과 행동을 따라했다.

 

“눈에 힘 빼.”, “맞았다고 변호사 대. 그런 거 무서우면 형사 안 해.”



 

당시 큰 인기를 끌었던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보고 자란 세대 일부가 직업으로 경찰을 선택했다. 그리고 2012년 경찰 수사에서 끝이라고 할 수 있는 경찰청 지능수사에 뛰어들었다. 이들이 낸 최대 결과물이 ‘김광준 사건’이다.

 

여기서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와 김광준 사건을 관통하는 인물이 있다. 바로 경찰 황운하다. 영화 배경인 1996년 당시 인천서부서 형사과장을 지냈으며 2012년 경찰청 수사기획관으로 김광준 사건을 지휘하기도 했다. ‘검찰 저격수’, ‘싸움닭’, 이라는 황운하를 수식하는 말처럼 ‘김광준 사건’에서도 검찰과 부딪히는 피하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부담을 느낀 경찰 수뇌부는 황운하를 수사연수원장으로 보낸다.

 

그 해 박근혜 정권이 들어섰다. 그 후로 황운하는 수사 부서를 맡진 않았지만 언론 노출이 잦았다. 박근혜 정권 들어 무너진 경찰 인사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렇게 튀는 언행으로는 아예 승진이 물 건너간다는 주변 우려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도 예상 못한 박근혜 탄핵 후,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다. 그리고 황운하는 치안감 승진을 하며 새롭게 비상을 했다.

 

이렇게 거칠 것이 없기에, 황운하는 언론의 주목을 받는다. 하지만, 대부분 관심은 황운하 입을 향했다. 정작 인간 황운하, 경찰 황운하를 향한 접근은 없었다. 그에 대한 조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물론 황운하가 드러낸 언행이 경찰조직에 발전을 가져왔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확인할 수 있는 건, 검찰 권력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으려는 일관성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 저항이 가능했던 것은 황운하에게 흐르는 반골기질 때문이라 본다.
 
필자는 이런 기질이 어디서 시작하여 촉발됐는지 궁금했다. 이야기는 경찰대에 입학하기 전까지 황운하가 겪은 삶부터 시작한다.

 

황운하는 1962년 대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한국전쟁 당시 북에서 내려와 정착했다. 황운하는 아버지가 경로당에서 다른 노인과 신념 문제로 자주 부딪혔다고 기억했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에게 고집만 세운다며 나무라곤 했다. 어머니는 슬기로운 분이었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도 고등학생 황운하는 우등생이었다. 황운하는 서울 명문대에 입학해 과외를 하면서 학비를 벌 생각이었다. 하지만, 계획은 이상한 지점에서 틀어졌다. 1980년 전두환은 과외를 금지하는 ‘730 교육개혁 조치’를 단행한다. 서울 명문대에 다니겠다는 꿈은 꺾였고 다른 대학보다 차라리 경찰대 입학이 낫다고 생각했다. 막연하게 경찰이 되면 뭔가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황운하는 1985년 경찰에 입문해 소대장, 중대장, 부대장을 지냈다. 경찰은 계급에 따라 일정 기간 돌아가며 집회·시위를 담당하는 기동대장, 중대장·소대장을 맡는다. 이 시기를 함께 했던 직원들은 황운하가 부하 직원을 잘 포용하는 상관이었다고 기억했다. 한 후배는 술에 취해 황운하가 사는 자취방을 찾아갔던 일화를 들려줬다.

 

“한참 자다가 배가 고파 깼는데 냉장고에 얼린 떡이 있더라고요. 녹여서 먹으려고 프라이팬에 떡을 놓고 식용유를 두른다는 게 그만 꿀을 부었지요. 떡은 탔고 술에 취해서 그냥 그대로 잤어요.”

 

황운하는 뒤처리를 해놓고도 전혀 후배를 나무라지 않았다. 이런 모습은 아량 넓은 어머니를 닮았다고 할 수 있다.



 

황운하 특징으로 ‘배포’를 기억하는 직원도 있었다. 1989년 황운하가 종암경찰서 파출소장 시절이다. 관내 시장에서 신고가 들어왔는데, 한 정육점 주인이 칼과 칼갈이를 들고 소동을 벌인다는 내용이었다. 파출소 직원 두 명과 의경 등 세 명이 출동했다.

 

현장에서 정육점 주인은 칼과 칼보다 더 긴 칼갈이를 들고 시장 포목점에서 천을 자르며 난동을 피웠다. 출동한 파출소 직원이 정육점 주인을 향해 가스총을 쐈다. 하지만, 정육점 주인은 순간적으로 피했고 반대쪽에 있던 다른 파출소 직원이 가스를 맞았다.

 

 



 

 

경찰 한 명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다른 한 명을 현장을 장악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황운하가 도착했다. 황운하는 먼저 대화를 시도했다. 흥분한 정육점 주인이 소리쳤다. 

 

“당신 누구야?”


“내가 여기 장암파출소 소장 황운하다.”

 

황운하는 정육점 주인을 결국 제압했다. 이렇듯 황운하와 함께 했던 직원들은 그를 가리켜 이‘포용력’과 ‘배포’를 가진 덕장이라고 평했다. 그런데 다른 증언은 전혀 뜻밖에 모습을 드러낸다. 특히 경찰이라는 계급 조직에서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다.

 

1993년 대통령 김영삼이 당선 직후 서울 신당동에 있는 중대를 방문했을 때 일화다. 당시 이 현장에 있었던 한 직원은 이렇게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기동대는 대통령 맞이 예행연습을 했지요. 황운하 중대장이 맨 앞에 서 있었고, 대통령이 악수를 하면 각자 신고를 하는 연습이었습니다. 기동본부장이 대통령 역할을 했지요. 악수를 하던 기동본부장은 황운하 중대장에게 시계를 풀라고 했어요. 당시는 경찰이 부정부패 이미지 때문에 고급 차를 몰거나 고급 시계를 못 차는 분위기였거든요. 황운하는 롤렉스를 차고 있었어요.”

 

기동본부장이 시계를 가리키며 지시했다.

 

“빼.”

 

황운하는 느릿느릿한 말투로 뺄 수 없는 이유를 말했다. 하지만, 기동본부장은 단호했다.

 

“무슨 소리 하고 있어? 경찰관이 롤렉스를 차면 안 되는 거 몰라? 빼!”

 

황운하는 조근조근 다시 설명했다. 그날은 그렇게 넘어갔다. 이튿날 다시 예행연습이 반복됐다. 기동본부장은 여전히 황운하 손목에 있는 시계를 발견했다.

 

“어제 빼라고 했는데?”

 

이 일화를 전한 이는 황운하가 그때도 다시 조근조근 말대꾸를 했다고 기억했다. 이후 기동본부장은 전체 지휘관 회의에서 황운하를 겨냥해 거칠게 비난하기도 했다.

 

황운하는 왜 그랬을까? 황운하는 기동대 생활이 즐겁지 않았다. 경찰이 집회·시위 현장에 과잉동원되는 게 자존심 상했다. 직업 경찰에게 동원 수당을 준다면 저렇게 작전을 짜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외부 위문·격려 물품이 경비 계통에 들어오는 것도 못마땅했다. 경찰이 거지도 아닌데 왜 위문을 받고 라면과 빵을 받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없어 보이는 경찰이 자존심 상했다. 그래서 황운하는 당시 매형이 하고 있던 롤렉스 시계를 달라고 하여 손목에 차고 다녔던 것이다.

 

1985년 경찰이 된 황운하는 1995년 경찰서 과장(경정)으로 승진하기까지 13년 동안 썩 바라지 않는 보직을 거쳤다. 종암경찰서 형사 반장, 대전동부경찰서 형사계장 경험으로 서울에서도 거악과 맞설 수 있는 형사계장으로 가고 싶다고 편지도 썼으나 소용없었다.

 

이 시기 직원들이 보기에 황운하는 고집이 셀 뿐 평범했다. 당시 직원들이 기억하는 ‘황고집’은 주로 인사에서 발휘됐다. 1980~1990년 당시 경찰서 계장 자리는 여러 경로로 뇌물을 받을 수 있어 인기가 좋았다. 경찰서 인사는 서장이 지시해도 해당 부서 과장이 승인해야 한다. 황운하는 서장이 추천한 직원을 부패하다는 평이 있다며 거절했다.

 

거절 직후 주말에 황운하는 직원들과 치악산에 놀러 갔다. 서울에서 치악산까지 가는 길에 휴대전화가 내내 울렸지만 황운하는 서장 전화를 끝내 받지 않았다. 이러한 황운하의 자존심이 고집과 결합하면서 상사를 애먹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질들은 수사를 만나며 황운하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황운하는 1995년 경정으로 승진 한 후, 인천서부경찰서(1996년)를 서울 중랑경찰서(1998년), 성동경찰서(1999년), 마포경찰서(2000년), 용산경찰서(2001~2003년), 강남경찰서(2003년)를 돌며 형사과장을 지냈다.

 

황운하가 경찰 수사권 아이콘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은 1999년 성동경찰서 형사과장 이후다.


당시 형사들은 형사과장에게 자기 반에 형사 한 명 더 달라고 하소연을 했다. 다른 인원이 없어 쩔쩔매는데 형사들은 검찰에 파견 나가서 검찰 수사를 돕고 있었다. 황운하는 이 시기에 검찰 파견 경찰을 모두 철수시킨다. 고집과 배포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런 행보는 1996년부터 시작했는데 초기에는 전면 철수가 아니라 실력 있는 형사를 반드시 복귀시키는 정도였다.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배우 박중훈이 연기한 형사 박재인도 당시 인천검찰청에 파견됐는데 황운하가 인천서부경찰서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그해 ‘김포토박이파’를 검거하는 쾌거를 거둔다. 당시 관내 나이트클럽에서 벌어진 행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피의자가 이미 수배를 내린 김포토박이파 소속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또 감청을 통해 용의자가 한 호텔 지하 룸살롱에 있다는 정보도 입수한다. 황운하는 형사들과 룸살롱을 급습했다.

 

“다들 벽을 향해 돌아서!”

 

한 명이라도 뻣뻣하게 나오면 바로 머리를 쥐어박았다. 경찰서에서 본격적인 조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형사 반장이 과장실로 황급하게 들어왔다.

 

“잘못 데려왔는데요.”

 

반장은 지금 데려온 20대 초반 젊은이들이 난리를 치고 있다는 보고도 했다. 형사들도 상황을 수습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황운하는 씩씩거리는 20대들을 모두 과장실로 불렀다. 그리고 다짜고짜 야단을 치기 시작했다.

 

“벌써 룸살롱에서 술이나 처먹고 다녀? 부모님들에게 연락해서 무슨 돈으로 술 먹었는지 다 조사해야겠다!”

 

그들은 더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당시 황운하에게 상황을 보고했던 반장은 어느덧 노인이 됐지만 경험도 적고 나이도 어렸던 과장 황운하에 대해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당시 인천서부경찰서 형사들은 ‘파주 용주골 사건’을 가장 잊을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황운하가 전 형사들을 동원해 다른 관할지인 파주에 있는 집창촌 용주골을 쓸어버린 사건이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가 본격적인 막을 올렸다. (제2화. 내 자존심이 어때서.)

 

 

사실 그대로 진실되게 전달하는 기사를...
황총 18/04/13 [21:37] 수정 삭제  
  멋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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