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수정 5일 오전 10:05분]
강릉시(시장 김한근)가 내부 감사를 통해 공무원의 비위 사실을 적발하고도 4개월 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오히려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해당 공무원에게 부당하게 명예 퇴직을 강요해 사표까지 받았지만 논란이 일자 이를 반려했다.
"소장 A씨의 비위 퇴직 강요받을 정도로 중대하지 않아"
강릉시농업기술센터 소장 A씨(4급)는 지난달 초 명예퇴직 신청서를 냈다. 그런데 퇴직 기한을 며칠 앞두고 A씨의 명예퇴직 신청서는 돌연 반려됐다. 강릉시 감사관실이 최근 A씨에 대한 징계사유를 포착해 특별감사를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제동을 건 것이다.
이에 앞서 강릉시는 A씨의 명예퇴직 신청을 수용하기로 결정하고, 감사원, 검찰과 경찰 등 수사기관으로부터 ‘범죄사실이 없다’는 회신까지 받은 상태였다.
지방공무원법에 규정된 명예퇴직은 정년 전 스스로 퇴직하는 것으로 일반 퇴직과 달리 별도의 수당이 지급되며, 명예퇴직을 신청하면 임용권자는 징계사유가 있는지 감사원과 검찰청, 경찰청, 내부 감사실 등으로부터 확인 회신을 받은 후 퇴직 처리를 하도록 돼 있다.
강릉시는 특별감사에 대한 사실을 지난달 말 언론에 공개했다. 시는 “최근 강릉농업기술센터에서 육성중인 민가시 개두릅 묘목 400여그루가 없어진 것을 확인하고 자체감사에 착수했다”면서 “관련 공무원이 신청한 명예퇴직을 반려했다”고 밝혔다.
4개월 전에 비리 포착... 절차 무시하고 사건 무마 위해 소장 A씨 퇴직 강요
취재결과 강릉시가 밝힌 내용은 사실과 달랐다. 강릉시 감사관실은 지난 6월, 강릉농업기술센터(이하 센터)에 대한 감사에 착수했다. 감사 결과 지난해 11월 초 민가시 개두릅 모종 400그루를 전·현직 시의원에게 무상으로 제공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이 작물은 일정한 자격을 갖춘 사람에 한해서 분양했으며 그루당 3천 원의 자기 부담금이 있었지만 이를 어긴 것이다. 민가시 개두릅(음나무순)은 가시를 없애 관리를 수월하게 만든 것으로 강릉농업기술센터가 자체 개발한 농가의 고소득 작물이다.
이런 명백한 규정 위반 사실을 확인했지만 시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결정을 미뤘다. 대신 이를 무마하기 위한 대응책을 논의했다. 묘목을 받은 당사자들은 이 같은 사실을 모두 인정했다.
이같은 감사 결과는 김한근 강릉시장에게도 보고됐다. 비위 사실을 확인하고도 무슨 이유에선지 한 달이 넘도록 아무런 처분을 이뤄지지 않자 강릉시공무원노조가 나섰다. 노조는 장시택 강릉시부시장과의 면담을 통해 조속한 처리를 요구했다.
노조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8월 초에 성사된 이 자리에서 노조 측은 “감사를 실시한지 한달이 넘도록 아무런 조치가 없는 것은 사건을 뭉개려고 하는 거 아니냐”고 물었고, 장 부시장은 “직원들이 많이 연루가 돼서 다칠 우려가 있고, 파종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가 없어서 몇 그루가 비었는지 관리가 허술하다”며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다.
그로부터 한달 반이 흘렀을 때도 시는 감사 결과에 대한 처리를 진행하지 않았다. 지난 9월 추석 무렵 노조가 재차 조치를 취하라고 요구하자 그제서야 감사관실로부터 응답이 왔다. 해당 소장을 명퇴 처리하고 마무리 하면 되지 않겠냐는 뜻을 전해 온 것이다. 윗 선의 결정이라는 설명도 덧 붙였다.
이에 대해 노조 관계자는 “‘윗선에서 소장을 명퇴해서 처리하면 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는 말을 했다”면서 “소장이 조용하게 나가면 (사건이 무마)되지 않겠냐고 판단한 것 같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 같은 내용은 노조와 감사관실 등 여러 경로를 통해 소장 A씨에게 “거취를 빨리 정하는게 좋겠다”는 표현으로 전해졌다. 사실상 퇴사 압박이었다. 이 과정에서 A씨가 노조를 찾아가 두차례 만났던 것으로 알려졌다.
소장 A씨는 퇴직 압박 사실을 인정했다. A씨는 지난달 명예퇴직 후 인터뷰에서 “그런 요구가 있었던 것은 맞다 그러나 이유 여하를 떠나 모두 내 잘못이고, 조직을 위해 잘해보려고 한 것인데 이렇게 됐다”면서 “내가 모든 걸 떠안고 떠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강릉시 한 관계자는 “이번 내부 제보는 인사에 불만을 품은데서 비롯됐다”고 귀뜸했다.
노조 관계자는 이에 대해 “(노조)지부장하고 소장하고 몇번 만난 것은 사실이다”면서 “그러나 직접 사퇴 압박을 한 것은 아니고 시에서 들은 내용을 전했을 뿐이다”고 해명했다. 이어 “공무원을 퇴직시키고 안시키고는 인사 결정권자의 결정이 권한”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소장 A씨는 올해 12월까지만 근무하기로 조율됐다. 그러나 이 후 사건이 알려질 것을 우려한 강릉시의 거듭된 요청에 따라 A씨는 퇴직 시기를 앞당겨 지난 10월 초 명예퇴직 신청을 했다.
이렇게 강릉시의 강릉시농업기술센터 감사결과 은폐 처리는 마무리가 되는 듯 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이 정치권에 알려지고 일부 시의원들이 조사를 요구하자 김한근 시장은 다급하게 입장을 바꿨다. 강릉시 한 관계자는 “사실 감사과에서 감사를 하면 일정기간 내에 규정에 따라 결과를 처리해야 하는데, 당시 몇 달 동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고민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인사업무에 밝은 한 공무원은 "소장 A씨의 비위 행위가 퇴직을 강요받을 정도로 중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규정대로 처리하면되는데 강릉시가 무리한 처리로 결국 자충수를 둔 것"이라고 비판했다.
강릉시 감사관실 감사과장은 4일 ‘소장의 퇴직 압박에 관여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기억이 안난다”고 답했으며, 부시장의 입장을 듣기위해 비서실로 연락을 취해 메모를 남겼지만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