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 대형사건 X파일 2-1

1991년 고향 강릉에 부임…지방주재기자는 전천후 기자다

홍창업 논설주간 | 기사입력 2022/12/02 [18:51]

동해안 대형사건 X파일 2-1

1991년 고향 강릉에 부임…지방주재기자는 전천후 기자다

홍창업 논설주간 | 입력 : 2022/12/02 [18:51]

 

홍창업 논설주간  © 시사줌뉴스



1991년 9월말 중앙일보 강릉(영동)주재기자로 발령을 받아 10여 년만에 고향 강릉에 내려왔다. 당시 중앙일간지 지방주재기자들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주재지역에서 정년을 마치고 퇴직하는 것이 관례였다.

 

강릉에 내려오기 전 선배들로부터 “당분간 기자실에 상주하지 말고 강릉지사 사무실에서 기사를 쓰라”는 조언을 들었다. 당시 중앙언론사에는 지방기자실에 대한 불신이 다소 있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강릉시청기자실에는 나를 포함해 지상파 3사와 SBS ·YTN등 방송사와 지방 언론사는 물론, 동아일보·한국일보·서울신문·국민일보·세계일보·연합뉴스 등 조선일보와 경향신문을 제외한 대부분의 중앙일간지 기자들이 모두 상주해 있었다.

 

중앙일간지 기자들은 취재지역도 넓었다. 강릉시·동해시·삼척시·속초시·명주군·양양군·삼척군·고성군 등 영동지역 8개 시·군을 비롯해 평창·영월·태백·정선 등 강원도내 11~ 12개 시·군이었다. 이들 지역에서 발생하는 정치·경제·문화· 사회 등 모든 분야에 대한 1차 취재 책임은 주재기자에게 있다. 대형 사고의 경우 본사에서 기자들을 파견해 지원한다.(대부분 후배 기자)

 

2006년 2월 본사로 발령받아 강릉을 떠나기까지 15년동안 영동지역에서 기자 생활을 하면서 대통령 선거는 제14~16대, 국회의원 선거는 제14~17대까지 현장에서 취재 활동을 했다. 강릉시장은 23대 (관선)시장을 지낸 김진선 전 강원도지사부터 첫 민선시장으로 3선을 역임한 29대 심기섭 시장 재임 때까지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게 하라는 뜻)의 관계를 유지했다. 

 

검찰이나 경찰·행정·의회 등 이른바 권력기관과 기자는 ‘언제, 어디에서 서로 날을 세울지 모른다’는 숙명을 가졌기 때문이다. 필자는 대통령 선거를 취재하면서 강릉에서 YS와 기자간담회를 한 적이 있다. YS와 경쟁을 한 고(故)정주영 회장(당시 통일국민당 후보)가 옛 강릉공설운동장에서 열린 후보합동연설회에서 “강릉에 서울아산병원같은 대형 병원을 건립하겠다”고 공약한 내용도 필자가 취재해 기사를 썼다.

 

15대 선거때는 옛 현대호텔(현 씨마크호텔)에서 피닉제로 불리는 이인제 대통령 후보가  강릉시청기자실 출입기자들과 조찬 간담회를 한 적이 있었다. 필자는 이 자리에서 이 후보에게 파격적인 제안을 한 일화가 있다. “YS의 금융실명제는 실패한 정책이다. 나는 이번 선거에서 화폐개혁을 공약하는 후보에게 투표를 하겠다”고 필자가 말했다. 

 

이 후보는 깜짝 놀라며 “화폐개혁요. 그건 혁명보다 어려운 개혁인데”라고 말했다. 필자는 화폐개혁론자다. 원화의 가치가 너무 떨어져 있는데다 지하에 숨어있는 돈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현행 금융제도로는 가명·차명 등의 온갖 수단으로 실제 재산을 숨길 수 있지만 화폐 단위(가치)를 바꾸는 화폐개혁을 하면 현금성 자산을 숨길 수 없다. 정해진 기간안에 새로운 화폐로 교환하지 않으면 모두 휴지 조각이 되기 때문이다. 

 

14대 명주·양양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때 당시 YS정권의 2인자로 불렸던 민주자유당 김명윤 후보를 꺾고 국회에 첫발을 디딘 최욱철 전 국회의원, 겨울연가로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배우 배용준의 취재 등도 모두 내 몫이었다.

 

1995년 첫 광역 및 기초 자치단체장 선거를 앞두고 당시 김진선 강릉시장과 건설부 차관을 역임한 이상룡 강원도지사가  물밑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필자는 선거를 1년여 앞두고 이 지사가 선거를 앞두고 도(道) 예산을 전용해 설 선물을 하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강릉시청 총무과 담당자에게 도지사가 선물한 명단을 달라고 했다. 담당자가 얼떨결에 서랍에서 서류를 꺼내는데 21개 시·군 명단이 모두 있었다. 그 자료를 기초로 기사를 작성했다. 주요 내용은 “이상룡 강원도시가 댐건설 이주민에게 지급하는 이주보상비 등에 쓸 수 있는 일명 ‘풀 예산’을 전용해 선물을 구입, 개인 명의로 도의원과 각 사회단체 대표·전직 공무원 등 6000여명에게 설날 위문품 명목으로 나눠줬다”는 것이었다.

 

기사는 중앙일보 사회면 톱기사로 보도됐다. 필자는 기사를 쓴 후 주말을 가족이 있는 정선에서 보낸 뒤 월요일 강릉시청기자실로 출근했는데 시청 직원들이 쫒아와 ‘주말에 어디 있었냐’고 물어왔다. 

 

알고 보니 기사를 본 이상룡 지사가 도청 공보관 등을 데리고 토요일 강릉에 내려와 ‘강릉고를 나온 중앙일보 홍창업 기자가 같은 영동지역 출신인 김진선 시장을 도지사로 당선시키기 위해 자신을 음해했다”며 한바탕 난리를 쳤다는 것이다.

 

신문사에서도 한때 비상이 걸렸다. 이 지사가 필자가 쓴 기사라 오보라며 정정보도를 요청해 왔다는 것이다. 편집국장이 필자가 쓴 기사 초고부터 데스크 과정을 쭉 살펴봤다. 

그런데 부장이 기사를 마지막으로 검토하는 과정에서 기사 중 ’(중략)이주보상비 등에 쓸 수 있는 (중략)’에서 ‘등’을 빼버린 것이다. 

 

결국 기사가 ‘이주보상비에만 쓸 수 있는 예산’으로 오보가 된 것이다. 기자는 자신의 기사로 인해 누군가에 신분상이나 재산상의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경우에는 토시하나 틀려서도 안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편집국장은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 ‘정정보도’하기로 했다. 그런데 국토부 차관 출신인 이 지사가 삼성물산을 통해 계속 압력을 넣자 ‘알아서 정정 보도를 해 줄턴데 건방지게 외부를 통해 압력을 넣는다’며 정정보도를 내보지 않았다.

 

기사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사건·사고와 같이 팩트만 서술하는 스트레스트 기사와 칼럼(기고 포함)· 사설이다. 스트레이트 기사는 있는 사실만 드라이하게 써야 한다. 기자의 의견이나 감정이 이입(移入)돼서는 안된다. 칼럼은 글의 소재가 된 팩트를 있는 그대로 쓰되 필자의 의견을 담을 수 있다. 사설은 논설위원이 쓰지만 특정 사안에 대한 언론사의 입장을 대변하는 글이다. 그러나 모든 기사는 팩트,즉 사실을 왜곡해서는 안된다.

 

‘언론이 진실을 보도하면 국민은 빛 속에서 살 것이고, 권력의 시녀로 전락하면 어둠 속에서 살 것이다. 고(故) 김수환 추기경이 생전에 남긴 격언이다. ‘나는 신문없는 정부보다 정부없는 신문을 택하겠다’(토머스 제포슨·미국 제 2·3대 대통령)

 

강릉시와 강릉시의회 등 공직자는 물론, 필자를 포함한 기자들도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가슴속 깊이 새겨야 할 덕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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